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티고노스 왕조 (문단 편집) === [[안티고노스 1세]] 모노프탈모스의 아시아 장악 전쟁 ===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는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불과 33세 나이로 서거했다. 대왕의 이복동생인 [[필리포스 3세]]가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나 그는 이미 있으나마나한 존재였고, 실권은 알렉산드로스 3세가 생전에 말했던 "가장 강한 자"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필리포스 3세 아리다이오스(기원전 323~기원전 317)는 제국을 통치할 기량이 부족한 데다가 항상 형의 뒷전에 밀려나 있어서 제왕이 되기 위한 교육도 받지 못한 평범한 젊은이일 뿐이었다. 그는 제국의 실권을 쥐고 있는 노장이면서, 대대로 마케도니아의 아르가이 왕가를 비호해 온 [[안티파트로스]]의 비호 속에서 왕위는 유지할 수 있었다. 안티파트로스는 통일 제국을 유지시킬 힘이 있었으나, 그가 기원전 319년 천수를 모두 누리고 78세로 사망하자 제국의 실권은 [[폴리페르콘]]에게 넘어갔다. [[안티고노스 1세]]는 곧 폴리페르콘에게 대항했으며, 리키아 총독 [[에우메네스]], 바빌로니아 총독 셀레우코스, 메디아 총독 페이톤, 마케도니아 총독인 [[카산드로스]]와 합세하여 폴리페르콘을 추방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마케도니아 본국에는 필리포스 3세를 인정하지 않는 알렉산드로스 3세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 미망인 [[록사나]], 그리고 어린 왕 [[알렉산드로스 4세]](기원전 323~기원전 305)가 있었다. 폴리페르콘은 그들의 진영으로 들어가 안티고노스에 대항하여 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 안티고노스는 곧 에우메네스나 셀레우코스, 페이톤 등이 나중에 자신과 겨룰 세력이 된다고 판단하여 에우메네스와 페이톤을 붙잡아 처형하였으나 셀레우코스는 프톨레마이오스를 의지하여 이집트로 도망갔다. 안티고노스는 재빨리 소아시아를 장악하고, 시리아로 쳐들어가 상당 부분을 획득했다. 곧 카산드로스, 셀레우코스, 프톨레마이오스, 트라키아 총독인 리시마코스가 안티고노스에 대항하자, 안티고노스는 자신이 마케도니아의 유일한 섭정임을 선포했다. 그리고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그리스인은 모두 자유인이고, 도시국가의 독립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선포를 하여 그들의 지지를 획득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즉시 같은 포고를 함으로써 이에 대응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